때론 걸으면서, 계속 걸으면서, 나를 완전히 잃어버리고자 했다. 그것만이 나를 구원해 줄 것이라고, 길을 계속 걷다가 어느 순간 내가 모르는 장소에 나를 통째로 버리고자 마음먹기도 했다. 가령 꿈같은 곳, 꿈을 찾느라 생의 전반을 방랑했다. 더 이상 떠나지 않는다. 그런 곳은 이번 생에 없음을 보았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꿈, 을 꾼다는 것. 더는 이 좁은 생의 굴레를 반복하고 싶지 않아서 벽을 넘어보려는 것인지도 모른다. 내가 넘어야 하는 것은, 현실의 장벽이 아니라 내가 넘어야 하는 것은, 나 자신밖에 없는지도 모른다.

불면증은 너무 오래된 꿈 속이기 때문에 잘 깨어나지 못한다.이편을 넘어보는 그림자의 끝없는 독백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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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지 맑은 겨울날, 지극한 평화로부터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음의 분리 불안증. 불안이 오지 않는 것에 대한 이상한 불안이 있다. 불안의 어미는 젖을 물리고 내 귀에 불안을 속삭인다. 혈연을 끊는 것은 어렵다. 너무나도 어려워 보인다. 불안은 내 전반적인 삶에 개입하여 너무 많은 것을 대신하고 있다. 나는 불안의 모성을 박차고 나와 온전한 나 자신으로 독립하고 싶었다.

창밖을 오래 바라보았다. 무언가 잃어버린 눈빛으로 세상을 내려다보고 있었는지도 모른다. 집들은 모든 여백을 빼곡히 차지하고 있다. 쉬어가는 하늘이 없음을 바라본다. 실재의 너머는 수류가 드센 어항 속 세계 같았다. 저 화려한 풍경을 바라보며 빽빽한 건물만 남은 채 멸종된 인간 이후의 삶을 상상해본다. 세상의 모든 욕망이 끝나면, 이 땅에는 무엇이 남을까, 라는 의문과 함께 폐허 이후의 삶을 생각한다. 어느 날 삶이 내게 모래바람이 이는 이곳을 가짜라고 말한다면, 열심히 살고 있었는데 어느 날 저편에서 진짜의 삶이 나타난다면. 그러니까 어쩌면 이 현실은 꿈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진짜라고 믿는, 이 세계의 화려한 바람을 걷어낸다면.

백지는 쓰다듬을 수록 빛이 났다. 이렇게 이상한 말을 함으로써, 나는 세상 속에 최선을 다해 존재하고 있다. 단 한 마디의 오지 않는 목소리를 듣기 위해 하루를 온종일 서서 기다린다. 많은 일을 포기한 채 기별도 없는 무언가를 위해 인내한다. 불투명 커튼을 드리운, 낯선 자의 방을 염탐하듯 오지도 않고 짐작할 수도 없는 결말을 시간을 기다리듯 가만히 풍경을 넘겨보고 있었다. 살점과 내장을 허공에 다 뜯기고 남은 흰 뼈처럼 말의 골조만 밤새 빛이 났다. 말하려고 했던 말보다, 잃어버린 말이 더 많았고, 하고 싶은 말보다는 할 수 없는 것들이 더 많았다. 살 없는 감정은, 감정의 유곽만을 드러낸 채 아무도 살지 않는 무덤 같다, 라고 쓴다. 마음의 조리개를 조인다. 중심에서부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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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여진 문장은 엎질러진 현재이고 돌이킬 수 없는 과거이다. 삶을 다시 앞 장으로 되돌리는 건 불가능한 일이다. 우리는 순간을 기록하고, 또 그것이 영원히 버려져야 함을 망각해선 안 된다. 그렇게 적으며 가까스로 다음 장으로 넘어왔다. 나는 나였던 지난 나를 뒤로한 채 쓰여지지 않는 미지로 향하는 중이다. 이름조차 불러보지 못한 숱한 사건들 속의 나에게 후회로 남고 싶지 않아서, 마지막 작별 인사를 하는 것. 속수무책으로 사라져간 날들의 안녕을 위해 기도하는 것. 그것이 내가 나를 위해 할 수 있는 일이고, 현재를 견디는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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