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순례자의 계시록 요한이 태어난 모행성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뒤섞여 살아가는 인류가 자리를 잡은 곳은 언제나 문명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완성되었고, 그것들은 눈이 부시게 발전하며 아늑한 터전이 되어 주었다. 인간은 이따금 그것을 약탈하고, 훼손하고, 불을 질렀으며, 끝끝내는 모조리 없애려고 들었다. 그럼에도 계절이 존재하는 어느 작은 별에 사는 것들은 자신의 고향 땅을 사랑했다. 크나큰 우주 안에서 가장 값질 수는 없겠지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류를 언제나 끌어안아 주던 이 행성에서는 죽음은 있을지라도 멸망은 있을 수 없었다. 번영에는 반드시 쇠락이,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뒤따랐지만, 이 별만큼은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것이 순례자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던 모행성 사람들의 첫 번째 패착이었다. 평..
어느 순례자의 계시록 요한이 태어난 모행성은 아름다운 곳이었다. 뒤섞여 살아가는 인류가 자리를 잡은 곳은 언제나 문명이라는 이름의 국가가 완성되었고, 그것들은 눈이 부시게 발전하며 아늑한 터전이 되어 주었다. 인간은 이따금 그것을 약탈하고, 훼손하고, 불을 질렀으며, 끝끝내는 모조리 없애려고 들었다. 그럼에도 계절이 존재하는 어느 작은 별에 사는 것들은 자신의 고향 땅을 사랑했다. 크나큰 우주 안에서 가장 값질 수는 없겠지만,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인류를 언제나 끌어안아 주던 이 행성에서는 죽음은 있을지라도 멸망은 있을 수 없었다. 번영에는 반드시 쇠락이, 삶에는 언제나 죽음이 뒤따랐지만, 이 별만큼은 영원하리라 믿었다. 그것이 순례자가 사랑하고 또 사랑하던 모행성 사람들의 첫 번째 패착이었다. 평..
신이시여 평안을 주소서
―그러나 데워질 수는 있다면 @YuSeong_1999 “형님.”그리 불러대는 목소리가 익숙해지는 것은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에 필요했던 시간보다는 명백히 짧았다. “형님”이라 호칭하는 특유의 담담하고도 밝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면, 블레이드는 자연스레 그 허여멀건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능글맞게도 선을 넘나드는 그를.블레이드는 그것이 거슬렸다. 그러나 이를 그에게 언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만 희미하게 감지했다. 불쾌함을 부러 참는 성정은 아님에도 블레이드는 이유조차 없이 그렇게 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가까울 테다.기실 목소리에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니던가. 어찌 되었든 같은 팀에 속한 자이므로. 카프카의 언령에 의식..
―그러나 데워질 수는 있다면 @YuSeong_1999 “형님.”그리 불러대는 목소리가 익숙해지는 것은 고통에 익숙해지는 것에 필요했던 시간보다는 명백히 짧았다. “형님”이라 호칭하는 특유의 담담하고도 밝은 목소리가 귀를 파고들면, 블레이드는 자연스레 그 허여멀건한 얼굴을 떠올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능글맞게도 선을 넘나드는 그를.블레이드는 그것이 거슬렸다. 그러나 이를 그에게 언급하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다만 희미하게 감지했다. 불쾌함을 부러 참는 성정은 아님에도 블레이드는 이유조차 없이 그렇게 했다. 어쩌면 그런 마음을 먹었다기보다는 그렇게 되었다는 것에 가까울 테다.기실 목소리에 얼굴을 떠올리는 일이야 충분히 그럴 수 있는 일 아니던가. 어찌 되었든 같은 팀에 속한 자이므로. 카프카의 언령에 의식..
흉터란 아물 수 없는 것
당신이 죽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닙니다 동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방관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또 죽음 앞에서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하지 마십시오 지킬 수 있었는데 여전히 힘없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갖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위인입니다 대업을 이룬 영웅이었습니다 모두를 죽게 한 나같은 것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나 역시 모두를 구해봤자 결국 추방당했을거라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을 버텨냈다고 해도 두 번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끝은 도래할 것이며 그곳에..
당신이 죽든 말든 내 알 바는 아닙니다 동정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나와 관련이 없는 사람의 죽음에 슬퍼할 이유가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방관했다는 생각이 들게 하지 마십시오 내가 또 죽음 앞에서 아무 손도 쓰지 못한 채 바라보기만 했다는 기록을 남기게 하지 마십시오 지킬 수 있었는데 여전히 힘없고 아무 것도 하지 못하는 사람이라는 자각을 갖게 하지 마십시오 당신은 위인입니다 대업을 이룬 영웅이었습니다 모두를 죽게 한 나같은 것과는 다른 사람입니다 마땅히 대우를 받아야 하는데 이런 꼴을 하고 있다는 것은 나 역시 모두를 구해봤자 결국 추방당했을거라는 얘기밖에 더 됩니까 어쩌면 그랬을지도 모르겠습니다 한 번을 버텨냈다고 해도 두 번 오지 않으리라는 확신을 할 수 없습니다 언젠가 끝은 도래할 것이며 그곳에..
읍소
: 그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면 @YuSeong_1999“죽었네요.”“죽었지.” 건조한 바람이 스친다. 흐릿한 햇빛이 닿는다. 들려오는 것은 두 사람의 목소리이나 이곳에 있는 것은 둘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있다. 사람이 죽어 영혼을 남긴다면, 그래서 그 영혼이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한 검에 담긴다면, 이 무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말해야 할까. 그러한 흑백의 풍경. 요한의 순백색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되살아나는 일도 없겠죠.” “선주인들이 들었다면 네 목을 따려 했을 거다.” “그냥 그렇다고요. 게다가 그런 기적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블레이드 씨처럼 아주 대단하신 분에게나……. 알았어요. 그런 눈 마요. 무섭다고 몇 번을 말해요.” 요한의 손이 허공을 휘젓는다..
: 그 속으로 들어가 하늘을 바라보면 @YuSeong_1999“죽었네요.”“죽었지.” 건조한 바람이 스친다. 흐릿한 햇빛이 닿는다. 들려오는 것은 두 사람의 목소리이나 이곳에 있는 것은 둘뿐만이 아니다. 수많은 사람이 이곳에 있다. 사람이 죽어 영혼을 남긴다면, 그래서 그 영혼이 자신의 마지막을 함께한 검에 담긴다면, 이 무덤에는 몇 명의 사람들이 존재한다 말해야 할까. 그러한 흑백의 풍경. 요한의 순백색 머리카락이 흔들린다. “되살아나는 일도 없겠죠.” “선주인들이 들었다면 네 목을 따려 했을 거다.” “그냥 그렇다고요. 게다가 그런 기적은 누구에게나 주어지는 게 아니니까요. 블레이드 씨처럼 아주 대단하신 분에게나……. 알았어요. 그런 눈 마요. 무섭다고 몇 번을 말해요.” 요한의 손이 허공을 휘젓는다..
흙을 파고 눕자꾸나
――그러나 나는 영원한 꿈을 꾸겠소!ⓒ Yuseong_1999별과 조명. 두 가지엔 우주에 놓아 비교하자면 별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할 정도의 거대한 차이가 있다. 커다란 별, 그리고 그에 비하면 아주 자그마한 조명. 그러나 밤의 도시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이때만큼은 조명의 빛이 별을 덮어씌우곤 한다. 그렇게 펼쳐진 야경이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다. 그리고 그런 희뿌연 별을 올려 보는, 두 사람이 이곳에 있다. 하늘은 검지 못해 차마 희다. 아래서 비치는 조명들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탓이다. 그런 수많은 조명 하나하나 적어도 하나의 삶이 담겨 있을 테지. 블레이드가 소리 없이 뇌까렸다. 오늘은 달조차 뜨지 않는 날이다. 그는 차에 기댄 채 제 넥타이를 고쳐 매며 여전히 밤하늘만을 향한 시선으로, “지루한..

――그러나 나는 영원한 꿈을 꾸겠소!ⓒ Yuseong_1999별과 조명. 두 가지엔 우주에 놓아 비교하자면 별에게 죄책감을 느껴야 할 정도의 거대한 차이가 있다. 커다란 별, 그리고 그에 비하면 아주 자그마한 조명. 그러나 밤의 도시에서만은 그렇지 않다. 이때만큼은 조명의 빛이 별을 덮어씌우곤 한다. 그렇게 펼쳐진 야경이 화려하다 못해 찬란하다. 그리고 그런 희뿌연 별을 올려 보는, 두 사람이 이곳에 있다. 하늘은 검지 못해 차마 희다. 아래서 비치는 조명들이 제 존재감을 드러내는 탓이다. 그런 수많은 조명 하나하나 적어도 하나의 삶이 담겨 있을 테지. 블레이드가 소리 없이 뇌까렸다. 오늘은 달조차 뜨지 않는 날이다. 그는 차에 기댄 채 제 넥타이를 고쳐 매며 여전히 밤하늘만을 향한 시선으로, “지루한..